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5:28)
예수님은 자신이 알고 교제하던 사람들 넘어서, 자신이 알고 실천하던 계명을 넘어서,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을 넘어서 알지 못하던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 뭔가 강력한 어떤 것이 예수님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여인은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간청합니다.
여인은 '내부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외부인'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에게 아직 품지 않은 큰 소명을 상기시켜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여인이 상기시키는 보다 큰 소명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자신의 소명과 위임을 다시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들의 모임'에 참여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의제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갑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그러한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요청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던 이들은 우리를 위협하는 타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와 정읭의 복음이 우리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제가 상상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예수님의 독백으로 끝이 납니다.
'나를 넘어서 타인에세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위대하신 권능의 힘으로 우리를 이끄실 뿐 아니라 '타인'의 말과 존재를 통해 이끄시기도 합니다.
타인을 소외시키는 규제들은 하나님의 포용력으로 타인에게 향하는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방인,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의 이웃입니다. 이들 모두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익숙한 삶의 영역을 넘어서 "여인의 딸이 즉시 나으리라"라는 놀라운 고백이 있는 그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공동체로 모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의 왜곡된 돌봄의 영역을 넘어가게 하소서.
우리를 부르셔서 이웃들, 타인들, 국외인들, 상처받는 이들에게 나아가게 하소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실천하게 하소서.
윌터 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집 (가보지 않은 길)
